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문단 편집) === [[모레아 전제군주국]]의 멸망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Despotate_of_Morea_1450.svg.png|width=300]] || || 제국 멸망 직전인 1450년경의 [[모레아 전제군주국|모레아]]. 자주색 영토가 형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디미트리오스]]의 영토. 보라색 영토가 동생 [[토마스 팔레올로고스|토마스]]의 영토이다. || 미스트라스에 수도를 둔 [[모레아 전제군주국|모레아]]는 1348년 설립되어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영역으로 한 동로마 제국의 신하국으로, 황제의 동생이 군주에 취임해 왔다. 동로마 제국이 멸망할 당시 모레아는 콘스탄티노스 11세의 형제들인 [[토마스 팔레올로고스]]와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원래 토마스가 통치자였는데, 콘스탄티노스 11세가 디미트리오스를 공동 통치자로 삼으라고 명령했다. 콘스탄티노스가 즉위하기 이전에 디미트리오스는 제위에 대한 욕심이 있었고. 동서 교회의 통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내세우며 콘스탄티노스의 즉위에 딴지를 걸었는데, 이들 형제의 모후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준 덕에 콘스탄티노스 11세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스는 언제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는 동생을 수도에 계속 둘 수 없다고 판단하여, 모레아로 보낸 것.]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당시 모레아는 위기에 처한 수도를 구원하려 했으나 몇 년 전 [[파디샤]] [[메흐메트 2세]]의 선왕인 [[술탄]] [[무라트 2세]]의 공격으로 입은 피해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수도까지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기에 수도의 함락을 그저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문제는 [[콘스탄티노폴리스|수도]]마저 무너진 마당 속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모레아의 공동 통치자였던 토마스와 디미트리오스가 서로 반목하고 있었다는 점. 아예 모레아의 수도(형 디미트리오스는 미스트라스, 동생 토마스는 글라렌차)를 따로 두고 영토까지 반으로 나눠 각자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는 두 사람의 외교적 입장 차이가 문자 그대로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디미트리오스는 친오스만에 반서유럽이었던 반면, 토마스는 친서유럽에 반오스만이었던 것. 이러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고, 결국 형제간의 지긋지긋한 대립에 지친[* 이는 사실 명분에 불과했고, 배후 조종자가 따로 있었다. 원래 모레아는 황제 [[요안니스 6세]]가 창건했는데, 그는 팔레올로고스 황가가 아니라 칸다쿠지노스 가문에 속했다. 그러다 보니 이후 모레아는 칸다쿠지노스 가문이 다스렸는데, 후에 칸다쿠지노스 가문의 황제들이 폐위된 이후 팔레올로고스 황가의 군대가 모레아를 점령, 칸다쿠지노스 통치자를 몰아냈다. 그리고 그 후손은 대대로 앙심을 품고 있다가, 이때 반란을 배후조종한 것.] 모레아의 알바니아계와 그리스계 주민들이[* 그리스 땅인 모레아 반도에 왜 알바니아계 주민이 있냐면 1300년대 후반 모레아의 통치자인 [[테오도로스 1세 팔레올로고스]]가 모레아 경제를 일으켜 세워보겠다고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모레아 이주를 적극 장려했던 것.] 반란을 일으켰다. 위기에 빠진 두 통치자는 메흐메트 2세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되고 오스만 군의 지원을 받아 토마스와 디미트리오스는 반란을 진압하는 데 성공한다. 반란 진압의 대가로 1454년 모레아는 메흐메트 2세 휘하로 들어가게 되고 그 후 잠시 동안 오스만 제국과 모레아 사이의 평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미 한번 반란을 겪어 [[메흐메트 2세|파디샤]]의 지원으로 겨우 반란을 진압했음에도 이 양반들이 정신을 못 차렸는지 토마스와 디미트리오스의 반목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반목이 계속되다 보니 조공조차 바칠 수 없을 정도로 나라 살림이 엉망이 되었고, 결국 메흐메트 2세는 토마스를 몰아내달라는 디미트리오스의 요청을 빌미로 1460년 모레아를 침공하여 모레아를 멸망시킨다. [[토마스 팔레올로고스]]는 [[로마]]로 망명하여 거기서 [[교황]]과 제후들에게 동로마 제국의 망명 황제로서 대우받다가 1465년 사망했고,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디미트리오스]]는 통치자 지위를 유지하는 대신 투옥되어 1470년 [[에디르네]]에서 사망했다.[* 디미트리오스는 당연히 이의를 제기했지만, 메흐메트는 ~~ 쿨하게 ~~ 무시했다. 당시 관료들 가운데 메흐메트에게 왜 디미트리오스를 통치자로 삼지 않는지 물어본 인물이 있었는데, 메흐메트 曰 '그런 자는 어떤 왕국을 맡더라도 제대로 통치해내지 못할 것이다.' --[[파디샤]] 말이 맞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